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 제국/역사 (문단 편집) ==== 고르디아누스 3세와 필리부스 아라부스 ====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살해당하면서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이제는 로마의 공동 황제인 막시무스와 발비누스를 두고 로마 원로원이 두 개의 파벌로 나뉜채 정쟁에만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때 발비누스는 자신처럼 오래된 명문가 출신임에도 훨씬 많은 공을 세운 푸피에누스 막시무스를 시기했고, 막시무스 역시 자신이 아퀼레이아에서 싸울 동안 치안 유지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킨 발비누스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르디아누스 3세의 어머니로 고르디아누스 1세의 딸 [[안토니아 고르디아나]]가 개입된 것으로 강하게 추측되는 음모 아래 프라이토리아니가 황궁으로 쳐들어가 막시무스와 발비누스를 둘다 납치하여 살해한다. AD 238년 한 해동안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에 이어 막시무스와 발비누스까지 살해당하는 혼란이 발생한 끝에 이제 고르디아누스 3세가 유일한 로마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황제가 될 당시 13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머니가 대리 통치하였고 고르디아누스 3세 내각은 [[티메시테우스]]와 필리푸스 아라부스 같은 동방 출신들이 장악한 섭정 통치방법으로 운영된다. 이때 고르디아누스 3세의 근위대장 티메시테우스는 자신의 딸을 소년황제와 결혼시켰고, 여러 정적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키운다. 다행히 권신 티메시테우스는 로마 원로원과 큰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이 시기부터 제국 안에서 자연재해가 터지고 고트족이 다시 침범하는 일 등이 연이어 터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AD 242년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사푸르 1세가 동방 속주를 다시 공격한다. 이에 티메시테우스는 사위인 고르디아누스 3세와 함께 동방으로 향하여, 페르시아군을 격파한다. 이후 로마군은 그대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진격하는데, 티메시테우스가 갑자기 사망한다. 따라서 로마군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역습을 허용해야 했고 후원자를 잃어버린 고르디아누스 3세는 장인 생전부터 프라이토리아니를 통제해온 또 다른 인사 필리푸스 아라부스에게 근위대장 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이 임명 후에도 로마군은 온전히 고르디아누스 3세를 지지하지 않았고, 황제는 AD 244년 페르시아군과 교전 중 살해(전사)된다. 고르디아누스 3세가 의문스러운 과정 속에서 죽자, 동방에 있던 원정군 병사들과 프라이토리아니는 필리푸스 아라부스를 황제로 옹립한다.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이름 중 아라부스는 아랍 출신이라는 뜻으로 시리아의 베두인 부족 출신인 아랍인이었다. 필리푸스는 유럽인이 아닌 아랍인 중에도 로마 황제가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필리푸스도 통치자로서는 무능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편이었으나 정치력은 나름 있어 로마 원로원과 가급적이면 충돌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고 이를 통해 황제 자리를 지켜나갔다. 그러나 AD 249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이 도나우강 방어선을 넘어서 침공해오자 이를 격퇴하는 전공을 세운 데키우스가 병사들의 추대로 로마 황제가 되었고 이에 절망한 필리푸스는 자살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